구일이
며칠 전, 날씨가 좀 쌀쌀하다 싶어 뒷산으로 운동간다던 아내에게 '추운데 산에 갔냐'고 카톡을 보냈다.
다른 때 같으면 카톡으로 답이 왔을텐데 아내는 즉각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고선 대뜸 하는 말이 "구일이 어제 밤에 집나가서 안 들어왔어~"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집 앞 슈퍼에 가는데 따라나오더니 옆길로 새는데 불러도 안오고 그냥 가더란다.
들어오겠지 싶어 그냥 왔는데 그러고선 안 들어왔댄다.
집 밖에는 거의 안 나가는 녀석이라 길을 잃어버린 듯 싶었다.
다른 땐 끽해야 골목 입구까지만 따라나왔다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활동영역을 벗어나더니 그 사단이 나버렸다.
어릴 때, 주차된 차 밑에서 "야옹~ 야옹~"울고 있는 걸 119에 구조되어 어찌어찌 우리집으로 들어오고선
늙은 강아지에게 혼나면서 사회성을 배워선지 고양이 하는 짓에 강아지 하는 짓을 섞어놓은 행동을 해서는
'개냥이'이라고 불리던 녀석이었다.
그래선지 고양이를 질색하던 아내나 나나 별 거부감 없이 우리집 분위기에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었다.
난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그르릉~ 그르릉~"하는 소리릴 구일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털을 빗겨줄 때도 그 소리를 내는데, 난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일부러 빗질을 해주곤 했었다.
아침이면 강아지는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 구일이란 녀석은 주인을 깨워서 밥을 달란다.
사료를 먹으면서도 기분 좋은 날은 그르릉 거리곤 했는데...
그런 짓들이 생각나며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는데 딸아이까지 내게 카톡으로 소식을 알려왔다.
딸아이에게도 틈틈이 동네 한바퀴씩 돌아보라고 했는데 다행히 처음 나가서 금방 찾아왔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아내의 마지막 눈길에 있던 근처의 차 밑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더란다.
"이리와~"하고 부르니 쫄래쫄래 기어나오더니 품안으로 쏙 안기더란다.
아내를 제일 따르지만 딸아이도 한 식구란 걸 인지하고 있었다보다.
아내는 몇번이나 찾으러 나갔어도 지붕 쪽으로만 시선을 두며 찾았는데
이 녀석이 마침 딸아이 지나갈 때 울음소리를 냈던게 운명을 결정지은 셈이다.
그렇게 구일이의 1살 생애에서 두 번이나 차 밑에서 구조된 경력을 쌓았다.
그 사이 은근 맘 졸이며 걱정하다가 찾았다는 소식에 참 다행이다 싶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주인과 교감하는 맛을 알게 되어 그녀석에게도 은근히 정이 많이 들었다.
개던 고양이던 또는 그외의 어떤 동물이라도 외모가 아무리 멋지고 이쁜 애완동물이라도
주인과의 교감이 없다면 그런 정이 들 수 있을까...?
며칠째 아내에게 구일이의 소식을 묻고 있다.
이 녀석이 어릴 때의 트라우마가 있는데다 이번에 제대로 추위와 겁에 떨며 고생하고 놀랬는지
돌아온 첫날엔 종일 잠만 잔다더니 그리고선 아내의 껌딱지가 되었서는 부르면 바로 쫓아온단다.
이전엔 지가 내킬 때만 오곤 해서 과자봉지라도 부스럭 거리며 불러야 슬금슬금 오던게
이번 일을 계기로 더더욱 '개냥이'가 되었다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한 방에서 재우면 강아지의 코 고는 소리나 구일이가 아침에 깨워대서 잠을 설치기 때문에
추위에 따라 방 밖 거실이나 현관에서 재우는데 이젠 침대 밑에서 안 나오고 버틴단다.
어쨌거나 사람에게 의지하고 따르는 현상이니 그래도 미워할 수가 없다.
이젠 큰 사고 없이 수명이 다하도록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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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내 폰에는 사진이 몇 장 없지만 그것이라도 여기 남긴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존재감을 못느끼듯, 그러고보니 이곳의 강아지들, 커피와 초코의 사진을 남긴지 오래됐다.
종종 커피와 초코의 사진도 찍어줘야겠다.
이 녀석은 주인인걸 알아선지 아내가 앉았던 의자를 좋아한다.
실은 그게 아니라 저 푹신한 방석 때문인지도 모른다. ㅋ~
고양이가 털이 많이 빠져서 침대엔 못 올라오게 하는데, 그러자니 소파에 올라가 옷에 기대어 졸고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뒷태가 하트 같아서 찍었던 샷.
아침이면 침대 곁에 놓여있는 이 의자에 앉아 주인이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며 "그르릉~"거리곤 한다.
나도 잠결에 그 모습을 보고 팔로 끌어 안으면 팔에 의지하며 자리를 잡고는 그르릉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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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추가)
공부방하는 아내가 수업 중일 땐 두 놈이 나름대로 각자 편한대로 자리잡고 지켜보고 있단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큰소리라도 칠라치면 저 놈들도 슬금슬금 눈치보며 구석으로 숨거나 밖으로 나가곤 한단다.
같이 산 세월이 있어서 눈치는 빠삭해서... ㅋㅋ~
중간에 아이들이 끊길 때는 안 그러는데, 다 끝나고 아이들이 가고 나면 분위기가 바뀐 걸 느끼는지
대뜸 테이블 위로 올라와서 치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