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
2010년 5월 12일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나보다.
1시에 농협 약속이 잡혀, 그날 따라 점심이 늦어진 탓에 밥도 못먹고 갔다가는
그 이후로 밤 12시 넘기도록 밥을 못 먹고 빵 두어 쪽만 먹고 말았다.
오후녘에 일이 밀려 톰토를 따다 말고 선별 작업부터 거들어주던 아줌니 한분이 손을 다쳐 병원엘 다녀오고 부터
귀가 시켜드리는 중에 집에서 온 전화 한통은 그나마 이 패턴의 생활도 엉망으로 헝클어버린 시작이었다.
그날따라 술도 한잔 걸치신 아버지가 경운기를 몰다가 다쳐서는 대전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다.
첫날 응급조치 중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넘겨 중환자실로 옮기고선
내내 똑같은 상태로 경과만 지켜보고 있다.
마침 서울에서부터 오랜 친분이 있는 의사 선생님 한분이 내려와 근무하고 계신 덕에
마음이나마 든든하게 의지가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첫날 위독한 상황 중에 연락하여 내려왔던 아내는 다음날 다시 서울에 올라갔다가 주말을 빌어 다시 다녀갔다.
오늘 낮의 면회 시간엔 나와 아내만이 잠들어 계신 아버지를 보고 왔다.
손발이며 얼굴, 가슴 등을 만져보던 아내는 열이 있다는 걱정을 하는데
마침 면담 신청한 주치의가 도착하여 얘기를 나누었고
역시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상태 그대로라는 것만 주치의의 입을 통해 재확인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진 그렇다.
부자집 큰아들로 태어나 그 시절에 돈으로 밀어넣은 서울의 대학 생활에
공부는 관심 없이 집에와 나무나 심고하던 탓에 졸업장은 못따고 그냥 4년 수료만 하신 분이다.
웬만하신 주변만 있어도 훨씬 좋은 생애를 살 수 있었을텐데
한평생 거친 손으로 그냥 시골 동네의 촌부로 살아오신 분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돈 한푼 안 벌어보시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90 평생을 살다가신 분이시고,
아버지의 큰아들은 젊어서 그나마 남은 집안 재산 크게 거덜낸 틈바구니에서,
엄니의 표현을 빌자면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났어도 돈 한번 못써보고 살아오신 분'이다.
그랬던 불쌍한 내 아버지는 삶의 끝자락에서 마저도 고통 속에서 누워계신다.
수면제 및 안정제를 투여하여 수면 중인지 무의식 중인지 모르게 가쁜 숨만 쉬고 계신다.
갈비뼈 및 골반뼈가 골절이 되어 장기도 적잖게 손상된 상태에서
어쩜 통증 때문에라도 차라리 그렇게 계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내와만 둘이서 차분하게 살피던 중에
의식이 없으실 아버지의 눈에 아주 작은 눈물 방울같은 게맺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아버지 눈물 흘리시나?"하며 손으로 닦아보니 정말 그랬다.
"설마~?"하던 아내는 감겨진 눈꺼풀에 배어있는 물기를 닦으며
"아버지이..."하며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렇게 앙상한 몸에서도 눈물은 나올 수 있는 걸까...?
잠시 진정한 아내는 "내가 여기 저기 만지고 하니까 우리 온 거 아시나봐~" 한다.
아내는 참을 수 없었던지 나가자며 먼저 자리를 뜨고
난 "아버지 이제 우리 왔다 가요."하고 귓속말 하고 나왔다.
다른 증세일지도 모르겠다만 눈물을 흘리신다 생각하니 내 말도 알아들을 듯 싶어
그렇게라도 인사를 해얄 것 같았다.
남들은 이런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해도 좋다만
그런 고통 속에 누워있느니 이제 그만 삶의 끈을 놓으셨으면 좋겠다.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서도 한평생 호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신 당신께서
표현도 못한 채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생명의 끈을 잡고 있느니
그만평온한 세계로 가시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하다.
아버지, 불쌍하신 내 아버지...
고단한 당신의 삶, 이제 그만 거두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