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기 이전엔
서울에서의 평범한 월급쟁이였습니다.
최종 근무처에는30대 중반에 입사하여10년을 근무했습니다.
연매출 약 100억 정도의 중소기업체였지만 1인 1PC 체제에서
전산시스템을 총괄하는 프로그래머였습니다.
평소의 퇴근 후엔 식구들과 한강공원에 가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여가를 즐기는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지요.
10년을 지난 시점에서 문득 돌아보니 참허탈했습니다.
직장생활의 앞으로 남은 시간이래야 그곳에서 근무한 10년 만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노후를 준비하기는 월급으로만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후엔 더욱 막막했습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나중소기업 다니는 경우나
월급쟁이는 그저 '아이들 키워놓은 것 밖에 없다.'는 말이 공통이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월급쟁이의 월급이란건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그저 그 신분상에서 생활할 정도만큼인 듯 싶습니다. -.-;;
나름대로 6개월 전부터 상의하고준비하여 사표를 내고는
동생이 하는 공장에서 한 쪽 일을 맡아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는 애초 얘기했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대기업이야 잘 나갈지 몰라도
나라인구의 대부분이 차지하는 풀뿌리 경제는
'중국과인도(Chindia)'및동남아에 일거리를 빼앗기고
영세수출업체들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오퍼상들이 해외 나가보면 중국과 단가 경쟁이 안돼서
일거리를 따오지 못한다 하더군요.
즉... 현재의 체감 경제가 어려운 것은
풀뿌기 경제의 위축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잘 나가는 대기업들은 여전히 풍요롭지만
서민들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소위 대기업이 먹여살리는 인구가 2%인가 5%인가 된다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만
대기업이 나라 전 인구를 먹여살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불과 3개월만에 동생의 공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사람을 줄여야할 판에 내가 눌러 있으면 둘 다 더욱 힘들어진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동생의 공장... 한 1~2년을 더 버티다 결국 문 닫았습니다.
주변에선 '신화적'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초기 어려움을 극복하고기반을 잡은 경우였습니다만,
수출기반 위축이란 흐름 속에 살아남기엔 영세업체로서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영세업체의 현장엔 월급쟁이는 생각할 수 없는 또 다른 면에서의 고생되는 사연들이
책을 쓸만큼 구구절절하게 많더군요.
그래서 그런 계통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돈은씀씀이가 크더라도
남을 위한 돈에는 인색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고생해서 벌은 돈인데...'라는 의식이 박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하여간 그 3개월을 거치고 나서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시각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내에게도 의지하기 힘든 가장으로써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들판에 홀로 서서 어딘가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외로움과 절박함이 다가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직장생활이란 것, 어떤 의미에선 일정부분은 보호받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계속)
'귀농과 취농의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농] 블루 오션 vs 레드 오션 (0) | 2008.01.29 |
---|---|
[취농] 선택의 과정...2/2 (0) | 2008.01.29 |
[취농] 귀농과 취농 사이 - 직업적 정체성 (4) | 2008.01.25 |
[취농] 글을 시작하며 (4) | 2008.01.25 |
[귀농] 귀농의 꿈 앞에서 (0) | 2007.08.26 |